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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sca
생태(Ecology)와 경제(Economics) 그리고 윤리(Ethics)가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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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6. 15:47 Ethics

전쟁은 참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저도 전쟁이야기 참 좋아합니다. 영화는 많이 안 봐도 전쟁영화는 꽤 봤고(기억에 깊이 남은 건 '라이언 일병 구하기', '지옥의 묵시록' 등) 소설도 꽤 읽었고(삼국지, 전쟁과 평화) 논픽션도 꽤 읽었죠...



이야기로 따라가는 전쟁이 지루하다면 게임도 있죠...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C&C'시리즈, '에이지오브엠파이어'시리즈 같은 전략시뮬레이션은 직접 전략을 짜서 전쟁을 수행하는 게임이죠...(뭐 스타 같은 경우는 전략 만큼 중요한 게 스피드죠..;;) 또 '카운터 스트라이크'나 '서든어택'같은 FPS게임도 있습니다. 전 이런 게임은 조금만 하면 어지러워서 못 하겠더라구요...;; 오락실에서 하면 그런대로 하는데 말이죠....;;



오늘 참 요상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서울시 ‘현대戰 시나리오’ 공모 논란





기사를 요약하면 서울시에서 현대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공모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 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생에게 까지 공모를 했다는 거죠... (뭐가 문제인지 굳이 설명을 해야한다면 그건 슬픈 일이 아닐까요?)




분명 전쟁은 이 땅에서 만큼은 여흥거리가 아닌 현실입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정확히는 자본주의사회, 자본주의를 너무 강조하면 사상이 이상하다고 의심받을 거 같네요..;;)에서는 전쟁을 여흥거리로 만들어버렸죠...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 젊은이들은 앞다퉈 전쟁에 나갈려고 했습니다. 애국주의 광풍이 불기도 했지만 전쟁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영화나 소설이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죠... 심지어 어떤 청년은 징병검사에서 떨어지자 자살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베트남전쟁에 와서 바뀝니다. 오히려 반전운동이 크게 일어났죠...



그 이유를 김두식교수는 3 가지로 분석합니다. 첫 번째는 전쟁보도의 사실화입니다. TV보급이 확대되면서 TV기자와 사진기자들이 전선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취재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사실적으로 안방까지 전하면서 전쟁의 잔인함,무도함을 직접 사람들이 눈으로 목격하게 됐죠... 대표적인 건 바로 이 사진이죠...



20세기 '세상을 바꾼 사진'의 하나로 기록된 에디 애덤스의 '사이공의 즉결처형'입니다. 남베트남의 장군 한 사람이 베트콩 한명을  권총으로 즉결처형하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온전히 찍힌 이유는 그곳에서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이런 일을 일상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괴물'이죠...



두 번째는 베트남 전쟁을 치룬 시기가 미국 역사상 최고의 경제적 번영의 시기라는 점입니다. 경제적 번영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고 뉴딜정책으로 하층민의 생활이 안정되면서 이뤄진 경제적 번영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민주화는 문화,정치적으로 미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옵니다. 킹 목사로 대표되는 흑백차별운동, 여성해방운동(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락(우드스탁) 등등....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에서도 이런 운동이 전 세계를 휩쓴 때였습니다.



세 번째는 상이군인들의 귀향, 그리고 이들의 반전운동입니다. 베트남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쓰인 무기가 바로 헬리콥터입니다. 헬기의 사용은 전쟁을 크게 바꿔놓습니다. 헬기에 의한 무기, 인력, 보급품의 수송으로 전선을 보다 깊숙히 내륙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고, 이전 전쟁같으면 전선에서 죽게 나뒀을 부상 군인들을 헬기를 통해 살아서 귀향시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지체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를 지닌채 장애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들을 보고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말 그대로 목격하게 되죠... 게다가 이들 중 일부는 적극적으로 반전운동에 동참합니다.



Ron Kovic는 17세의 나이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합니다. 해병대에서 훈련을 받은 후 베트남전에 참전했는데 그곳에서 포격을 받아 척수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제대합니다. 귀국 후 '전쟁에 반대하는 베트남 참전군인회'에 참가해 적극적으로 반전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1990년 '아버지'부시가 일으킨 걸프전에도, 2003년 '아들'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Ron_Kovic)


File:Ron Kovic 2.JPG



요즘 6.25 전쟁을 다룬 영화, 드라마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보진 않지만 이것들은 볼 작정입니다. 과연 어떻게 전쟁을 다뤘는지 말입니다. 아마 지금같은 시기에 6.25를 낭만적으로 그리진 않겠죠... 설마 멋진 음악을 깔면서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는 폭파 장면 같은 건 없겠죠...



제대로 정신이 박힌 제작자라면 전쟁의 참혹함과, 어째서 어린 학생까지 전쟁에 내몰게 되었는 데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겁니다. 아마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받고 전쟁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다면 말이죠.... 오늘 '포화 속으로'를 보려고 합니다. 과연 어떨지 지켜 볼 일입니다.

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45 Evolution

무관심은 우리를 아둔한 늪에 빠뜨리는 반면, 과감히 실패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잘 실패할 것이다.




사무엘 베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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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밑에 '차기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반론 성격의 글입니다. 글의 성격 상 그 글을 쓴 사람이 보도록 써야할텐데 보니깐 개인 블로그에 글을 써놨더라구요... 그래서 여기다 쓰겠습니다.

글의 요지를 앞에 정리해놨더라구요.... '김대중 노무현정신을 적통계승한자가 결국 대권을 거머쥔다'

그렇게 써놨으면 '김대중 노무현 정신'이 무엇인지 적어놔야할텐데 안 적어놨더라구요... 결국 글의 논의는 정치공학적 예상 ;;;

정치공학적 예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예상만 해서는 알갱이가 없죠.... 글의 요지를 제대로 전개하려면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논의해야하는게 순서 아닌가요? 혹 2부에서 그 얘기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2부까지 기다리기엔 제 머릿속이 쥐어터질 거 같아 못 기다리겠습니다.


제 얘기가 너무 이념에 몰입돼 있고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소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정치공학적 논의 자체가 그런 이념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된 거죠... 정치외교학과 애들하고 얘기해보면 의외로 정치공학적 논의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정치철학이나, 이념, 사상 공부는 뒷전에 두고 말이죠....


그러나 저는 그런 현실주의에 매몰된 논의는 금방 바닥을 들어낼 거라 생각합니다. 정치란 비젼을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젼을 보여주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명징한 이념과 사상이 필요합니다. 이념과 사상 없는 정치는 곧 원칙 없는 정치로 나타나고 이는 상황에 따라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정치술수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현실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 글에 알맹이가 없다고 한 이유입니다.



2.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부분은 열려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댓글로 적어주시면 정말 즐거운 논의가 될 것 같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신'.... 저는 단어 선택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 둘을 같이 묶어 놓는 게 합당한지 의문입니다. 저는 둘을 떼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 이렇게 말입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전까지 우리 정치 흐름에 이어져왔던 흐름을 돌려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 흐름을 다시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빙빙 돌아 얘기해서 무슨 말인지 명확히 보이지 않을 것 같네요... 제가 생각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가장 큰 위업은 '햇볕정책'입니다. 이전 정부, 그러니깐 김영삼 정부 내내 대북관계는 최악을 달렸습니다. 이를 화해와 평화의 기조로 바꾼 분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관계에 관한 우리 정치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이 성과가 바로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나타났구요....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관계에 있어선 이전 정부를 충실하게 계승했습니다. 2002년 연평해전이 일어났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계승하지 않았다면 연평해전 이후 대북 강경책을 통해 국민과 정권을 통제하려 했을겁니다. 꼭 누굴 보는 것 같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발걸음은 10.4 남북정상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이명박정부는 이를 발로 걷어 차 버렸구요...;;



여기서 논의를 끝낸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신'으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넘어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지역정당'에 대한 탈피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두고 공과를 나눌 때 '과'로 항상 나오는 게 바로 '지역주의' 조장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내내 지역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당선 부터, 이후 총선, 지방선거까지... 선거 때만 되면 대한민국은 둘로 갈라 섰고 이 중심에 김대중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그 출발점이었구요... 탄핵에 대한 반발효과도 있었지만 17대 총선에서는 상당부분 성과를 거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선거구 개편을 통해 지역주의를 타파하고자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후 이라크 파병, 한미FTA 추진 등으로 자신의 지지세력인 진보 진영과 갈라서면서 나중엔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게 됩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나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이 노력은 성공을 거둘까요? 현재로선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민주당은 지역주의에 안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구요... 비록 이번 선거에서 그런 희망이 조금씩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단정짓기 어렵네요....



요약하면 '김대중 정신'은 대결과 경쟁을 지양한 화합과 공존의 대북정책, '노무현 정신'은 지역주의 타파를 통한 정치구조개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이제 진짜 제 생각을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저는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뛰어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들의 정신을 이어 받는 데 그쳐선 안 됩니다. 그들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비록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죠... 그래야 희망이 보입니다.


우선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계승은 필요합니다. 화합과 공존의 대북정책과 지역주의 타파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플러스 알파가 필요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모두를 관통하는 실패가 있습니다. 바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굴복'입니다. 앞으로 대통령이 될 인물은 꼭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이념을 들고 나와야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비젼을 보여줄 수 있고, 이 비젼을 바탕으로 국민을 통합할 수 있습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만의 경제관을 갖고 계셨습니다. 바로 '대중경제론'이죠...고 박현채 박사와 같이 고민한 이 대중경제론은 지금도 연구할 가치가 충분한 훌륭한 경제론입니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을 지켜 본 김대중 대통령은 이 개발이 궁극적으로 재벌과 부유층만 살찌우는 경제개발이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의 대중경제론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대중이 직접 참여해 생산하고 균등하게 분배받아 경제 정의를 이룩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동반 발전시키여 한다. 대중경제의 목표는 중산층을 지원하고 하위계층을 중산층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기업 위주의 독점 경제를 지양하고 중소기업을 육성해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고 구체적으로는 부품을 수입해 완성품을 수출하는 기업이 아닌 부품 자체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을 탄탄하게 육성시켜야 한다.



저는 아직 '대중경제론'은 읽어보진 못했고 박현채교수의 '민족경제론'만 읽어 본 상태입니다. 그때는 그저 이상론으로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은 이후 생각이 조금씩 바뀐 듯 합니다. 영국이나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통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유주의 쪽으로 생각이 기우신 듯 합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물론 1997년 외환위기였습니다. IMF로부터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요구 받아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했던 경제정책을 펴낼 여지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영미권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전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더욱 확대시켰습니다. 그 궁극적인 결과는 바로 한미FTA 협정이죠.... 한미FTA에 대해선 다른 글을 통해 논의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얘기할 거리가 너무도 많거든요...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10 년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과실은 일부 대기업과 상류층에게만 돌아갔고, 서민들의 살림은 계속 힘들어졌습니다. 비록 이 불평등한 분배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서민들의 구매력 향상을 위해 신용경제 활성화 방안을 내놓습니다. 바로 신용카드 확대 발급이죠... 결과는 신용대란이 일어나 서민들에게 빚더미를 안겼습니다. 참여 정부에서는 각종 개발 사업을 통한 집값상승의 로망을 키워줬구요....;;



이 모두 신자유주의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입니다. 개인에게 무한한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는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이 시대의 대안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로 전 세계 각국에서 폐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를 거부하는 한 정부가 있구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에게 제가 요구하는 세가지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평화 공존의 대북 정책을 통한 통일 국가 기반 조성


두 번째, 지속적인 정치개혁을 통한 지역주의 타파


세 번째,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경제관 확립.... (그 대안은 계속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44 Economy

이 글은 제가 'Karl.K.Jr'님 글에 댓글로 남겼던 글의 후속편 쯤 되겠습니다. 댓글로 쓰다가 지쳐서(ㅡㅡ;;)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여기에 적으려고 합니다. 글을 쓰다 잘 생각이 안나서 저장했는데 불러오기가 제대로 안되더라구요;; 오히려 잘 됐습니다.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도전합니다. ㅎㅎ

우선 제 소개를 잠깐 하면 저는 학교에서 화학과 환경공학을 복수전공하고 졸업해 1년 정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1년하고 뛰쳐나왔으면서 엔지니어라고 말하는게 사기네요... ㅡㅡ;;) 기자를 해보겠다고 뛰쳐나와 1년 넘게 집에서 눈칫밥먹고 있는 백수입니다.. (;;) 따라서 제 경제학적 지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꼼꼼히 읽어주시고 논리에 비약이 있거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사항이 있으면 따끔한 질책 부탁드립니다.  


230px-Alan_Greenspan_color_photo_portrait.jpg 이분은 한 때 제가 존경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미국 역사상 최장기간(20년)  FRB의장을 역임한 앨런 그린스펀입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하면 제가 이분을 존경한게 제가 생각해서가 아니라 권위자의 말에 따른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 때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가 제대로 경제학과 회계학을 배웠던 대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야합니다. 공학을 좀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선 경제학과 회계학 지식이 필요하다고 느낀 저는 경제학부에서 경제학원론과 회계원리를 수강합니다. 그 때가 2006년이니 미국 경제는 2년 후 있을 불황을 모르고 계속 성장하면서 물가는 안정된 일명 '골디락스 경제'에 재돌입한 시기입니다. 그린스펀은 물러났지만 경제학부 교수님들은 그린스펀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더라구요... '그가 세계경제의 번영을 이끈다', '그의 실용주의철학, 시장중심주의는 꼭 우리가 배워야 한다' 등등... 공부가 부족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던(지금 생각하면 핑계일 뿐입니다) 저는 무비판적으로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시장주의자로 만들었던 그린스펀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제 생각의 좌표를 재설정하고자 합니다. 


그린스펀이 FRB의장에 취임한 1987년은 미국 경제가 일본에 추월 당하냐 마냐로 의견이 분분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취임한 이후 20년은 미국경제가 세계유일의 슈퍼파워로 자리매김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위기에 대한 대처를 현명하며 미국 경제를 번영의 황금길로 인도한 그에게 붙은 별명은 바로 '세계경제대통령'이었습니다.


2001년 9.11테러로 미국 경제는 일시적으로 큰 혼란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는 일시적이었을뿐 미국 경제에 더 큰 혼란을 야기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닷컴버블붕괴'였습니다. 이 때 그린스펀이 내린 처방은 '선제적' 금리 인하였습니다. 6%가 넘던 기준금리는 단계적으로 1%까지 떨어집니다. 혼란에 빠진 시장을 구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을 급격하게 늘린 것입니다. 이는 물가상승이 우려되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린스펀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에서 생산된 값싼 제품이 미국의 물가상승을 억제해준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위기를 벗어난 미국은 2년 후 무리한 전쟁을 치루면서도 큰 경제 위기 없이 3년을 더 보냅니다. 그동안 미국은 신나게 돈을 쓰면서 빚을 늘려갔지만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합니다.

 
미국 경제는 순조롭게 성장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동안 미국인들은 집 사는데 돈을 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중산층이 그리고 서민층이 급기야 제대로 예금도 붓지도 않던 사람들까지 큰 집을 사기 시작합니다. 미국 은행의 영업방침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모험적인 기업에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주던 은행이 개인에게 대출을 공격적으로 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닷컴버블붕괴 이후 미국 경제의 활력은 줄어든 반면 시중에 돈은 너무 많이 풀린 탓입니다. 그린스펀은 아마 이라크 전쟁 이후부터 미국 경제의 과다거품을 인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2년 전 보여준 선제적 대응을 미룹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한결같이 미국경제의 거품은 다 걷어냈다고 말해왔습니다. 미국의 저금리는 1년 넘게 이어집니다. 비록 단계적으로 금리를 올리긴 했지만 이는 '선제적' 대응이 아닌 '반응적'대응이었습니다.




2006년 그린스펀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기틀을 마련했던 금리기조는 상당기간 지속됩니다. 그린스펀은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FRB의장을 유지한 인물인 동시에 가장 박수 갈채를 많이 맏으면서 퇴임한 인물입니다. 그런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의 정책을 하루 아침에 되돌리기란 웬만한 강단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버냉키는 전임자가 확정한 금리를 1년 넘게 유지합니다.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한채... 그는 전임자의 그늘에 1년간 갇혀있었습니다. 그동안 집값 거품은 더 커지고 맙니다. 2007년 4월 미국 내 2위의 모기지대출회사인 뉴센츄리 파이낸셜사의 파산은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사태는 커지고 커지면서 마침내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사가 파산신청을 하고 세계경제는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2006년 이후를 짤막하게 줄인 이유는 이 글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그린스펀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핵심은 어째서 그린스펀은 2003년 이후 금리를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했냐에 있습니다. 다음에 이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결론을 짓고자 합니다.


(추신) 2번에 걸쳐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쓰다보니 길어져 3번에 걸쳐 써야겠네요~;;

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41 카테고리 없음
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41 Ethics

매주 화요일마다 경향신문 교육면에 연재되는 '대입논술 가이드'를 꼭 챙겨 읽는다. 이번주 내용은 최근 교육부에서 시행하려다 만“부조리 행위 신고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에 대한 글이었다. ([대입논술 가이드]법으로 양심까지 통제할 것인가)

 
헉.. 방금 매우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이버에서 촌지에 관련한 이미지나 찾아볼려고 검색어를 입력했는데 가장 먼저 뜬 스폰서링크가' 전문신고포상요원'을 양성하는 학원 같은 곳이었다.


궁금해서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야에서 포상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 원산지, 신문고시, 선거법위반, 보험범죄 신고, 불법의료행위, 일회용품,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불법쓰레기소각, 유사석유, 위조상품, 청소년유해환경 등에 적용되고 있었다. (일회용품도 하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하나하나 보면 분명 일선 공무원이 모자르기에 적용되는 분야이며 신고를 하면 확실히 공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학원까지 생겨가며 '포상금파파라치'를 양성(?)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경우엔 공급이 수요를 '억지로' 창출한 게 아닐까?? 하긴 전에 뉴스를 보니깐 일부러 이런 일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도 있으니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어쨌든 원래 주제로 돌아오자. 촌지를 포함한 뇌물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나 보다. 고대 이집트 시절 부터 있었다니 아마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뒷돈을 써서 일을 수월하게 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나보다.

촌지와 뇌물은 도대체 뭐가 다를까?? 비슷한 점이야 앞에서도 말했듯이 뒷돈을 써서 일을 쉽게하는 데 목적을 같이한다. 뇌물이 큰 액수라면 촌지는 비교적 작은 액수라는 게 다른 점일까?? 뭐 인사조로 건내주고 받는 돈을 흔히 '떡값'이라고들 하는데, 이 말이 지금은 뇌물과 동급으로 변해버렸다. 어떤 글을 읽어보니 왜 삼성에서 검사들에게 뿌리는 돈을 떡값이라고 하냐며 비난했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그 돈을 떡값이라고 해버리니 원래 좋은 말을 지저분한 말로 바꿔 버린 것이다. 공자님께서 말을 바로 하라고 한게 괜히 한 말이 아니다.

촌지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작은 마음의 선물'이었던 촌지가 지금은 뇌물하고 동급이 되어버렸다. 이러다 나중에는 축의금이나 상조금 같은 말도 변해버릴지 모르겠다. 하긴 상도를 보면 뇌물 같은 상조금으로 이권을 챙긴 상인도 있긴 있다. 교육계에서 촌지가 문제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교육열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아이보다 뛰어나야 한다!', '다른 아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등등 이런 생각으로 똘똘 뭉친 우리의 학부모가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부 몰상식한 선생들이 나서서 돈을 받아 정당한 행위같은 차별대우를 한 게 문제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께 배우는 게 단지 지식뿐이라면 단지 수업료만 내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게 단지 지식뿐일까??  친구들과 어울리고 인성을 갈고 닦으며 모범이 되는 어른의 행동을 통해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게 있어야 학교 교육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 학교라면 학원과 다를 게 없으니깐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교육에서 적절한 성의 표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 그런데 현재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학부모라도 기꺼이 성의표시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 배운다음에 하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고, 그렇다고 아예 안 주자니 내 아이만 손해보는 느낌이고.. 또 줘버려도 맘이 편하지 않을테고..

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39 Miscellany

오늘 경향신문에서 한 칼럼을 읽었습니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지난 한 달 동안 세계에서 일어난 주요한 세가지 사건.. 이란 대선 불복시위, 온두라스 쿠데타, 그리고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유혈참사를 되돌아 보면서 과연 자유와 평등 인권이 진정으로 신장되었는지 묻고 있는 칼럼입니다.


위에 나온 세 사건은 분명 역사의 후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뭐 멀리 볼 것도 없이 현재 이명박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 사태만 봐도 역사는 뒷걸음질 치는 것 같습니다. 훈훈했던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용산 참사 주인공들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 국정원, 국세청은 똘똘 뭉쳐 현 정권을 보위하는데 진심전력을 다하고 있고,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져 가고 있습니다. 어제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 소득 10분위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소득격차가 10.67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올해 1/4분기 동안 10분위(최상위층)의 소득은 3.4% 늘어난 데 반해 1분위(최하위층)의 소득은 9.7% 감소한 결과입니다. 더 우울한 결과는 가처분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10.67배에서 11.12배로 벌어져 세제를 통한 부의 재분배는 커녕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상·하위 10% 소득격차 사상최대)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는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역사는 진보한다고 생각합니다. 올 초 한겨레 아카데미를 다녔을 때 가장 처음 쓴 논술 주제가 바로 '역사는 진보하는가'였습니다. 그 주제에 대해 저는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고 인권이 점점 더 존중받기 때문에 역사는 진보한다고 논했습니다. 그런데 논거를 살펴보니 조금 빈약하더라구요.. 논거로 제시한 게 시계나 냉장고 또는 수학공식 과학지식 같은 물건이나 지식의 확대를 자유의 신장으로 보고 이것들이 널리 퍼지는 것이 평등의 확대라고 해석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확대를 자유의 확대 민주주의의 확산을 평등의 확산으로 보고 현재 자본주의의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확산됐다고 논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자본주의의 확산은 자본의 무차별적인 확대에 지나지 않았고 민주주의의 확산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 의사민주주의(pseudo democracy)의 확대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김수행교수님은 '자본주의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에서 물질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은 무한정 확대됨으로써 자본주의 기반 자체가 흔들려 불황이 지속된다고 하셨습니다.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18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이 명제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생존을 거듭하고 있다는 걸 보면 자본주의라는 괴물은 엄청난 적응력과 생존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로 변질되고 있고 (이에 대해 자카리아는 오히려 책임성을 방기한 엘리트의 부상을 염려합니다. '자유의 미래' 참조) 개도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독재정권이 많습니다. 여전히 민주화의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역사의 진보를 외치는 이유는 세상은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세대의 경험과 지식이 나중 세대에 전달되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뒷걸음질 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오래되지 않아 곧바로 교정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와 엘리트주의 독재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도 이런 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유토피아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우리는 예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치독일의 전체주의, 소련의 중앙집권, 북한의 주체주의 등등.. 일방통행식의 유토피아 건설은 언제나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고 결과는 파국으로 나타났습니다.(북한의 경우는 파국으로 가고 있다고 표현해야겠네요)

역시 중요한 것은 일방통행이 아닌 소통과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도 책상 앞에서 책만 읽지 말고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소토을 해야 할 것 같아 이 블로그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제목은 'Ecology + Economy + Ethics → Evolve Earth' 입니다. 뭐 거창한 뜻은 아니고 생태학과 경제학 그리고 윤리학이 만나면 지구에 큰 변화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정했습니다. 유진 오덤이라는 위대한 생태학자의 생태학 교과서 가장 뒷부분을 보면 살아가는 곳에 대한 연구인 생태학과, 사는 곳에 대한 관리인 경제학이 통합되고, 윤리학이 연장되어 인간의 가치와 환경의 가치를 동시에 고려할 수 있을 때,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3E인 생태학(ECOLOGY), 경제학(ECONOMY), 윤리학(ETHICS)을 하나로 묶는 것은 궁극적인 총체주의이며, 우리의 미래를 위한 위대한 도전이 된다고 합니다. 비록 배운 것도 짧고 생각도 깊지 않지만 저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생태학이나 경제학 또는 윤리학은 거창한게 아닙니다. 생태학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네 주변의 하천이나 뒷산 이야기이고, 경제학에서는 주번 사람들 살림살이 정도에 국한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윤리학도 뭐 마땅이 무엇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정도로 얘기 해보려고 합니다.  

 전부터 계속 해보자해보자 마음만 먹었지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시작했습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 좋은 분들과 진솔한 얘기를 많이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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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36 Miscellany



 

이거 홧김에 해버렸는데 어쩌지?? 어쩄든 블로그 개시를 했으니 잘해봅시다~! 

아... 갈길이 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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