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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Ecology)와 경제(Economics) 그리고 윤리(Ethics)가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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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6. 15:59 Miscellany

우선 저는 기독교에 대해 별 감정은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꼬박꼬박 읽긴 하는데 그저 이야기 책으로 삼아 읽는다고 해야할까요?? 뭐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에 대해 조금은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지난 주 이곳도 그렇고 자게도 그렇고 종교 문제로 참 시끌벅적했습니다. 뭐 대부분은 기독교를 까는 내용이더라구요...;; 저도 분명 일부 기독교인(일부긴 하지만 그 일부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소수가 아닌 다수입니다)의 비정상적인 행태가 참 못마땅합니다. 비판은 물론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도 그 비난을 귀담아 듣고 자신들의 종교생활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라는 조직이 뭡니까? 커뮤니티, 즉 공동체 아닌가요?? 정말로 교회가 공동체라는 의식이 있다면 일부 기독교인에 대한 비난을 자신의 비난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 지금처럼 조각조각 나뉜 기독교 교회에 대해 제 3자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주제 넘는 짓이라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론 정말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교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용기가 나지 않아 그 분들과 동참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 분들의 뜻만큼은 백분 공감합니다. 어쨌든 기독교에 대한 제 생각을 먼저 정리해서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제목대로입니다. 정말로 리비아에 한국인 목사가 선교하러 떠났을까요?? 엠비씨 뉴스에 나온 이후로 이 뉴스는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단 엠비씨 뉴스를 링크 걸어놓습니다.


리비아 교민 1명 추가 체포‥ 교민사회 '술렁'

뉴스 中

리비아 현지 한국 대사관은
목사 고모씨가 지난달 중순
종교법 위반 혐의로 구속 된 뒤,
고씨의 선교 활동을 돕던 교민 주모씨도
지난주 체포됐다고 밝혔습니다.

고 목사는 몇 년 전 유학생 신분으로
리비아에 입국해 수도 트리폴리에서
선교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뉴스의 소스가 어딘지 유심히 보시길 바랍니다. 대사관입니다. 그 뉴스에 의심을 갖게 된 계기는 오늘 미디어오늘에 실린 기사 때문입니다.



[단독]한국 외교관, 가다피 국가원수 정보수집 혐의로 추방…현지 언론보도 충격



기사 中



앗샤르끌 아우싸트 등 아랍 언론들에 따르면 리비아 정부보안 당국은 지난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이 리비아 정부요인 정보수집, 무아마르 알 가다피 국가원수의 국제원조기구 조사, 가다피 원수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내 조직에 대한 첩보활동을 한 사실을 파악하고 한국정부에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 비아는 이 직원이 외교관 신분이기 때문에 구속수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 수사를 벌였으며, 우리 정부에 항의하는 표시로 한국에서 리비아 대표부 직원들을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리비아 대표부 폐쇄가 아니라 일시 업무 중단이라며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업무가 재개될 것이라고 해명해 왔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보도다.





물론 그 출처가 리비아 언론이라는 점에서 100%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사관 말만 100% 믿기도 어렵죠... 리비아에 한국인 목사가 간 것 만큼은 사실인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리비아에 선교하러 간 건지 아니면 그곳 교민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하기 위해 간 건지 구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선교하러 갔다고 해도 지금껏 리비아에서는 기독교 선교로 인해 외국인을 구금한 전례가 없다고 합니다. 리비아가 미국과 관계도 안 좋고 독재자 카타피가 몇 십년동안 정권을 휘두르고 있는 폐쇄적인 국가지만 이슬람원리주의로 지탱되는 국가는 아닙니다. 적어도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원리주의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리비아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선교하는 목사 한 명때문에 양국 관계가 이렇게까지 파탄날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이 사건에 대한 분석을 뒤틀리게 한 게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기독교계에서 하는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찬성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

 

(주목할만한 댓글들)

 

 

개신교 선교의 떡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던 사례군요.

그걸 장로 대통령이 사용했다는게 웃음의 포인트가 되겠구요.

일단 뽑았으니 일 잘할 수 있게 믿고 기다려주자던 그 '교회쟁이'들 중 일부라도 그 맹신을 깰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시토방 어떤 글에서 인용함.)


개신교 선교는 예수를 믿으라는 말밖에 없지 그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땅에도 이루어지도록'

만들어나가려는 진보에의 노력이 예수가 말한 복음의 정수일진데

그들은, 그리고 제자신도 아직 달을 보지 못하기에

손가락도 검지가 아니라 반대쪽을 가리키는 중지나 약지를 보여주고는 말죠.


...저도 덜 억압적인 공동체주의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게시판에 댓글이라도 달고 글을 읽어본지 이제 한 한달 가량 되었나요...

글들 읽어보면 이 글쓴 분과 생각이 겹칠 때가 참 많네요.^^

(우리네 삶이 쪼개고 쪼개어지면 항상 어느 것과 어느 것의 경계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을텐데

오히려 그 미묘한 외줄을 걸어가면서, 그 외줄을 포기하지 않는게 더 칭찬받을 일이죠 뭐...)


아무쪼록 많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이슬람, 모든 종류의 기독교와 동양의 뛰어난 종교전통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인간을 포함한 생명과 지구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개신교인인 저의 입장에선 작은 규모의 구원이라 생각하거든요.

다른 종교의 언어로는 다른 표현을 쓸 수 있을 거구요.


댓글
2010.07.28 13:11:55
[레벨:3]Kieth
추천 3 / -5 비추   

전 신학생 입니다.

기독교 선교에 예수 믿으라는 말이 알맹이가 아니면 할 말 다 한 겁니다.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이죠.

천주교처럼 예수 안 믿어도 천국간다 라는 소리 해야 직성이 풀리시렵니까?

개신교인이라고 하셨는데 자조적인 반성을 넘어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의 옳고 그름 조차 구분 못 하고 계시네요.

개신교 선교에 대해서 얼마나 정통하신지 모르겠지만, 개신교가 흔히들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이 씹어대는 것 처럼 만만한 조직도 아니고, 멍청한 인간들만 모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선교라고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을 외치는 맹신자들처럼 할 것 같습니까?

엄청난 시간과 자본, 인력과 두뇌와 전략이 쏟아져 투자됩니다.

또 그러겠죠.

그 자본 어디서 나냐고.

제 친구, 지인들 꽤 많은 수가 선교사로 나갔는데, 결코 풍족하게 살지 않습니다.

거의 80-90%는 자비로 충당합니다.

가족, 친지, 친구.

교회에서의 지원이요?

제대로 선교에 대한 마인드가 있는 교회면 모를까, 선교사님들 교회로부터의 정기적이고 충분한 원조 거의 기대 안 합니다.

현지에서 직업을 가지거나, 어렵게 어렵게 선교단체를 통해서 지원을 받습니다.

현지에서 현지화 되어 현지인과 같이 호흡하고, 그 현지인들보다 결코 나은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결코 선교가 될 수 없을테니까요.

진보요?

기독교에서의 진보 성향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범신론 입니다.

기독교의 근간은 유일신 사상입니다.

성경이 가장 기본되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그 성경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 기독굡니다.

진보 기독교인들은 이 성경을 넘어서서 사상의 바벨탑을 만들고 있죠.

이 땅 위에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진보를 추구한다 라고 하셨는데(아마도 예수님을 진보적 사회 개혁자로 묘사하는 김규항씨의 영향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하늘 위의 가치들을 이 땅 위에 오게 하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 선굡니다.

모든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상태 가 저 하늘의 상태죠.

심지어 김규항씨도 진보를 위해서 성경을 넘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했지.

선교에 알맹이가 없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오지의 기독교 선교에서 예수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한참 훕니다.

선교를 위한 주변 상황들을 개선하고 정리하는게 첫 임무입니다.

제가 아는 선교사님께서는 20년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 한 지역에 계속 계셨는데, 기독교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0년 남짓입니다.

그 10년간 그 국가의 종교성을 대상으로 수없는 설득을 하셨고, 수많은 핍박과 공격을 이겨내면서 사회의 종교자유를 위한 '진보'적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그 국가는 현재 거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가 되었죠.

맹목적이고 알맹이가 없다고요?

정말 기가찹니다...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한다면 그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지 뭐 라고 넘기겠는데 이건...


반성도 좋고, 비평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발 자신이 믿는 가치를 조롱하진 말아 주십시오.

기독교인 자체가 기독교를 싸잡아 비난하고 욕하는데 대체 누가 기독교를 좋아하겠습니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듯, 현대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은 믿는 자들의 회의입니다.

그간 개신교계가 정말 형편없이 한 일들도 많았고, 맹목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천편일률적인 목회 시스템으로 현대에 맞지 않는 가치를 전달했다는 것 알고 있고, 그로 인해 자조적인 성격의 성도들이 등장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깨치기 위해서 목회자, 신학자, 신학생들은 부던히 노력해와서 그 결실을 보이고 있는데, 회중들은 아직도 똑같은 자조만 날리니...

갑갑하네요.

인터넷에서의 토론/포럼 글엔 대꾸도 하지 않고, 댓글도 달지 않지만(결론이 나지 않고 결국엔 현학적 자아도취에 빠질 뿐이기에),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워 한 글 남기고 갑니다.

삭제 수정 댓글
2010.07.28 13:44:41
id: namascanamasca
추천 1 / 0 비추   
profile

신학적인 거에 대해선 제가 뭐라고 할만큼 아는 게 없으니 다만 이거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하는 토론, 특히 종교에 관한 토론이 답이 안나온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얘기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전 이 세상을 부정하는 종교가 아니라면 어차피 종교도 이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 숨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기독교인들만 끼리끼리 모여서 얘기하기 보다는 보다 폭넓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도구 중에서 저는 가장 좋은 게 인터넷이라고 생각하구요... 물론 종교에 대해 악의적인 비난이 많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피하는 건 오히려 기독교를 더욱 더 폐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요?? 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

 

(덧붙이기) 제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결코 피하지 않았죠... 우리 기독교계에도 그런 분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댓글
2010.07.28 22:37:12
[레벨:4]BeersInHeaven
추천 0 / 0 비추   

본문 쓰신 분께 미안한 말씀 전합니다.

본문과 다르게 댓글이 이어질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애초에 제 신학을 뜬금없이 달아버렸네요.

제 댓글의 댓글이 좀 말할꺼리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또 장문의 댓댓댓글을 달았습니다.


댓글
2010.07.28 22:30:54
[레벨:4]BeersInHeaven
추천 1 / 0 비추   
오오~ 반갑습니다. 저는 신학 대학원 휴학생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상당히 큰 교단 소속의 인가된 신학교임을 밝힐테니 혹시 다른분이시라도 야매를 의심하지 않으시길....ㅋㅋ

신학생의 신분을 밝혀서 앞으로 게시판 활동에서 많이 제약을 받게 되겠지만
아무래도 님이 먼저 신분을 밝히셔서
다른분들이 보시기에 제가 먼저 단 댓글이
신학적인 고민없는 얄팍한 '조롱'으로 보여질까봐 어쩔 수 없이 밝히게 되네요.

아! 제 동기 중 한 형이 곧 캄보디아로 선교하러 떠나십니다.
솔직히 이 형은 줄을 좀 잘 선 편입니다.
전도사로 있던 교회에서 나름 지원을 해주셔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선교를 떠나게 되었지요.
더 좋은 조건의 필리핀 선교도 제의가 들어왔는데 기도 열심히 하더니 캄보디아 간다네요.


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독교 선교에 예수 믿으라는 말이 알맹이가 아니면 할 말 다 한 겁니다.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이죠."

하지만 그 뒤에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는 어떤 신학적인 내용도 없습니다.

그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넌 개신교가 아니다는 말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이 알맹이인지 말씀드리기 전에 님이 그게 왜 알맹이인지 말씀해주시는게 먼저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글을 몇번씩 정독을 해봐도 건질 수 있는 거라곤 '종교자유'밖에 없네요....

님이 기가 차하는 그 이유 한 번 제대로 들어보고 싶네요.

그걸 밝히지 않으시면 저도 기가 찰 수밖에 없어요.


저도 선교를 고민한 적이 있는지라 님이 묘사하신 선교의 모습들을 딱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대화를 통해 이야기해봐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기독교의 진보성향이 범신론이라시면 저야말로 기가 찰 뿐입니다.

님을 비롯한 기독교인들, 특히 개신교인들의 신앙관이 매우 배타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인격적이고 전지전능한 유일신론 외에는 모두가 다 진보성향이 되어 버리죠.

세상의 많은 신학자들이 기도하고 고민하며 발전시킨 개념들을

이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니까 깊은 사유없이 모조리 범신론이니 적그리스도니 해버립니다.


전 종교다원주의자입니다.

하지만 칼 라너나 폴 니터와 같은 종교다원주의가 아니라 과정신학자 존 캅의 입장과 더 가깝습니다.

(신학생이시니 깊게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하나님 개념의 근간 역시 진보 기독교인들도 성경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노예살이 하던 히브리 민족을 구원한 야훼신과 가나안 지방 토속신인 엘과의 만남이 그 출발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를 거쳐서 민족 단위 개념의 신이 전지구적으로 확대된 것이 오늘날 보편적 유일신이 된 겁니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참 성경 성경 말씀들 많이 하시는데

애초에 성경을 읽는 관점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그 관점도 성경에서 나왔다 그러시지만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부터 주관적인 입장에서 (그들이 그것을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작성된 것인데

실체없는(여기도 보면 알맹이가 없네요.) 성경적 관점 언급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의 사고와 대화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것 모두 신학교, 신학대학원 1학년이면 성서해석학이니 신구약개론으로 다 배우는 내용인데

이걸 제대로 배우고 중간,기말고사 점수도 잘 나온 사람이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싶네요.


진보 기독교인이 사상의 바벨탑을 만들고 있다.....

먼저 바벨탑 너머에, 혹은 꼭대기에 앉아있는게 누구일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남한에서 신학을 독점하고 다른 신앙에 대해서 이단 심문관이 되어 손가락으로 처형을 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네요.


바벨탑 신화가 우리에게 주는 무시무시한 교훈에 대한 성찰 없이 창세기 11장을 함부러 언급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선악과도 그랬고, 바벨탑도 그랬고

인간이 신과 똑같이 되려는 어떠한 시도도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했음을 이 신화는 경고합니다.

그래서 저도 개신교인의 제일 책무는 항상 인간에게 자신의 오만과 독선에 대해 경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개신교내 종교권력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할 교훈이기도 하지요.

신학생이시라면 평신도나 장로님들보다도 더 좋은 기회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신학을 점검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것을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하고 그래서 항상 깨어지는

그런 삶의 자세를 만들어갈 기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알맹이라고 생각하고 전의 댓글에서 언급한 진보에의 노력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저 물론 김규항씨를 매우 통찰력있는 좋은

출판인(? 왜냐하면 주력하시는 일이 좋은 아동잡지를 만드시는 분이라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도 깎고 있는 제 신학과 신앙에 도움을 주신 분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평택 대추리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던 곳에서 쫓겨날 때 가장 먼저 이주비 챙기고 이웃들을 떠났던

그 동네 교회 목사님도 큰 반면교사가 되었구요.



에릭 클립튼은 먼저 하늘로 떠난 자신의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저 하늘에서도 널 보면 눈물을 흘릴까 독백했었고...

전 먼저 생을 마감한 나의 동료들에게 저 하늘에서도 널 보면 맥주 한 잔 같이 마실 수 있을까 해서 패러디 아이디를 씁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예수님은

하늘에선 자신의 이름을 믿는 상태라고 생각했을까요.....


신학계에서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라고 생각하고

'나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유형의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를 말한다고 보는게 정설이지요.

신학생이시라 아시겠지만 '나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바실레이아는 통치의 개념도 함께 포함하고 있거든요.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은 하느님의 통치입니다.

예수님의 주옥같은 비유들은 이 통치를 설명하고 있구요.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들이 서로 웃으며 지내는 세상이고

먼저 된자가 나중되며, 산과 골짜기를 평평하게 만드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통치 핵심, 알맹이인 겁니다.


예수를 믿으라는 것은 이 통치를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선교도, 목회도 이 땅에서 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먼저 살아가는 운동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교나 전도는 진보운동인 것이지요.

적화사업, 아니 교회다니시는 분들 화이트앤젤 좋아하시니까 백화사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성찰이 없는 개신교인들이 그저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는 것은 알맹이가 빠진 겁니다.

처음에 언급한 제 동기 형은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선교를 나갑니다.

하지만 님처럼 그저 기가 차는 사람들에게 이 형은 기가 차는 겁니다. 전 옆에서 기가 차는 거구요.


님의 비평 행위도 좋습니다. 다만 기가 차서 할말, 해야할 말 다 하신게 아니기 때문에 좀 아쉽지만요.

제가 믿는 가치는 제 스스로에 의해서 언제나 비판받고 침범당하고 다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동료' 개신교인들에 대한 비판의 끝은 저에게 돌리려고 노력합니다.


저와 같은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적은 믿는 자들이 회의하지 않음입니다.

그들이 자기의 신앙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그들은 다수인데다가 힘도 엄청 쎄기 때문에 우리들도 같이 욕먹습니다.


삭제 수정 댓글
2010.07.28 23:20:07
id: namascanama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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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씩 읽고 또 읽게 하는 글이네요~ ^^;;


하느님의 통치처럼 막연히 알고 있는 것도 있었고, 바벨탑 이야기처럼 잘 모르고 있는 것도 있어서 이글을 통해 생각의 폭이 참 넓어짊을 느낍니다. 마치 꾸불꾸불한 오솔길을 오르고 난 후 산 위에서 볼 수 있는 광경처럼 말이죠...^^;; 뭐 아직 오를 산도 많이 남았고, 위에서 본다고 아래 펼쳐져 있는 마을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겠죠... 그래도 산 아래에서 막연히 저 위에 오르면 무얼 볼 수 있을까 항상 궁금했는데 조금은 알 거 같다는 느낌입니다.


처음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서 참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책을 남기시지 않았나였습니다. 물론 이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공자도 마찬가지죠...;;; 그래도 확실하게 말해주셨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그 해석을 둘러싸고 그렇게 다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했습니다. 유교도 공자의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참 오랫동안 다퉜죠..;;


그러다 칸트의 윤리학을 접하고 성경을 다시 읽으니깐 눈에 조금 들어오는 거 같더라구요... 칸트는 인간의 이성자체가 이성의 능력을 넘어서는 가상을 만들어낸다고 보고 이를 형이상학이라고 불렀죠... 그리고 이 형이상학은 이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실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죠...


아마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보인 모습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찬란한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몸'으로써 보이셨으니깐요...;; 보면 홀로 사색하는 모습보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먹고, 얘기하고, 치료하고, 격려하는 등등.... 주위의 높은 분들이 율법이 어쩌고, 규율이 어쩌고 말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직접 몸으로 민중과 부딪히면서 진리를 보이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깐 선교가 바로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 주위에 선교하러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잡을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댓글
2010.07.29 03:25:17
[레벨:4]BeersInHeaven
추천 0 / 0 비추   

언제나 느끼지만 글이 참 차분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하였던 진중권의 글입니다.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3029&article_id=61581


신학적으로 단순화한다면

예수님은 터키 인형, 하느님 나라는 등굽은 난쟁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같은 좌파 예수쟁이나 어떤 우파 예수쟁이도 문제는 시도때도없이 그 난쟁이를 들이대고만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님이 생각한대로 예수의 말보다 앞선 실천이야말로

오히려 이 시대의 예수쟁이들이 '믿을'만한 것이라 생각되네요.


댓글
2010.08.01 14:36:25
[레벨:3]Kieth
추천 0 / 0 비추   

안 보려다가, 그래도 내가 싸지른 글에 기분 상하셨을 기분을 생각해서 어떤 글을 올리셨는가 보고 사과를 드리던 말을 접던 하려고 댓글을 봤습니다.
신학대학원생 이셨군요.
뭐, 이래저래 할 말도 많겠고, 쓸 말도 많습니다만, 안 보는 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 드렸던 현학적 다툼밖엔 되지 않는다는 말씀, 다시 드리고 싶습니다.


전 신학적 다툼을 왈가왈부 하자는 것이 아녔습니다.

선교에서 예수 믿으세요 다음에 무슨 신학적 바탕이 필요한지 전 모르겠네요.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조직신학도, 그 조직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웨스터 민스터 강요(대/소요리 강요)나, 사도신경(니케아 신조) 역시도 예수에서 시작해서 예수로 끝나는데 이 외에 무슨 신학적 근거가 필요한가요?

필요하다고 생각해 봐도, 그 것이 님의 글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되려 예수의 이름은 아주 작아져 보이네요.

아무튼, 제가 생각도 성찰도 없이 싸질러 놓은 선교에 알맹이가 없다는 글에, 이렇게 신학적 근간들을 써 놓으셨는데, 그래서 알맹이가 채워졌나요?

제가 보기엔 전혀 없는데요, 채워진 것이.

채워진 것이 있다면 님의 자기만족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신학에 굉장히 박식하신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정진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뭐 이래저래 뺑뺑이 돌다가 이제서야 신학대 졸업 늦게 하고 대학원 준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제출한 논문(솔직히 리포트에 가깝지만)들은 교수님들께 종종 대학원생보다 높게 평가 받기도 했구요.
자랑 좀 하자면, 제 논문을 자기가 좀 차용해도 되겠냐는 교수님들도 계셨고, 실제로 쓰신 분도 계시구요. ^^;;

아무튼.

도통 성서해석학이든, 신구약개론이든 제가 배운 부분에서는 성경의 기록이 '주관적'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바르트나 틸리히 정도는 그렇게 해석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장로교쪽 신대원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야메는 아니라고 하셨는데, 연대신대원이나 감리교쪽 신대원을 다니시나요?

어딘지 명확하게 밝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리스도 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장로회 총회 신학대학교 대학원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실명을 알고 싶으시면 알려 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의심해서라기 보다는, 정통 개혁 신학쪽에서는 하지 않는 말씀들을 정통이라고 하셔서요.


그리고 진보 개혁 신학자들을 알고 싶으시면,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426047.html, http://well.hani.co.kr/board/view.html?uid=290053&cline=7&board_id=jh_mind 이 기사를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기사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진보 신학의 행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보편적 기사라 걸어 봅니다.

그리고 로마서와 조직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신 분이라면,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이단 판정하는 것이 사상의 꼭대기에 앉아서 신의 대변자 노릇을 자청하는 자기만족 놀이가 결코 아님을 아실텐데, 그런 소리를 쉽게 하시는 것을 보니 좀 찜찜합니다.

특히,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절대 '다른' 종교를 부정하거나 이단 판정하지 않습니다.

그들과 합의를 할 수는 없지만(최근의 가톨릭은 그렇지 않지만)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같은 종교내에서 명확하게 조직신학적 근거가 없는 종파를 이단이라고 판정하죠.

특히나 정통 개혁 구약개론에서는 결코 야훼신을 '지방신'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신학을 공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많이 접하신 것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하느님 이라고 하시는 것을 봤을 때, 개신교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만, 실수인 건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김규항씨는 출판인 이라고 알려졌지만, 진보주의자, 평신도 신학자로 더 유명한 분 입니다(종교계에선).

블로그도 한 번 가 보셨으면, 어린이 서적 출판자라는 말은 안 하셨을 겁니다.

검색을 통해 알아보셨나 본데, 기독교 관련 서적 『예수전』 출간하셨으니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평신도 신학자 치고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드리자면, 개인에 대해서 손가락을 돌리시면서 저에겐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모순이 아닌가요?

제가 바벨탑 사건, 창세기, 성경에 대한 묵상과 깊은 성찰 없이 지껄여 보였나봅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는 '이건 도저히 신대원생이 할 발언이 아닌데' 라는 부분들이 많이 보입니다만, 신학적 입장은 차이가 날 수 있으니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기분 상하게 해 드린 것 있으면 사과 드리려고 왔다가 안 오니만 못 하게 됐네요.

신학적 지식을 아무리 뽐낸들, 결국 합의점 찾아진 것 없죠?

생각 바뀐 것 없죠?

인터넷 선교는 굉장히 중요한 활동이지만, 지금 님과 제가 한 행위는 선교도 전도도 아닙니다.

감정과 정신력만 상하고 소비했을 뿐, 아무런 득이 없습니다.

덕도, 본도 되질 않죠.

모쪼록 이후의 말씀은 쪽지로 알려드린 제 블로그에 남기시던가, 쪽지로 남겨주세요.


그럼 건승하시길.

샬롬.

댓글
2010.08.04 01:57:11
[레벨:4]BeersInHeaven
추천 0 / 0 비추   

네^^ 참 우연히도 이 글 보게 되네요.

그리고 님이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날린 폭력에 응수할려고 했던 내가 참 허무해집니다.

그렇게 선교하시고 목회하세요 그럼....

님도 잘 아시겠지만 그런 생각 가진 목회자가 매년 수천 명이 배출되는 이곳에서

신학적으로 비판적인 성찰 없이 예수가 모든 것이라는

그저 표어고 언명에 불과한 말만 붙들고 살아가세요 그럼....


블로그에 주력하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댓글로 대화하는 건 맨투맨이 아닌데,

자신의 비판만 써놓고는

'합의점이 없을 것이니 더 이상의 대화는 생략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모르시나봐요.

님과 전화로 통화를 한다면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려도 혼자 기분나쁘고 말 일입니다.

하지만 댓글은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한 책임을 져야하죠.


왜 더 이상 대화가 안되겠습니까?

전 이번에 님을 통해서 많이 배웠는데....

그건 현학적 자기자랑이기 때문이 아니라

남의 의견을 현학적으로 보는 배알꼴린 심사와 지적 게으름 때문입니다.


댓글
2010.07.29 00:03:54
id: 수평선너머수평선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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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다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선교를 한다면, 과연 당신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굉장히 불편해 하실 것 같은데요.

무차별적이고 광적인 선교행위 때문에 되레 하나님 당신이 그리고 교단이 욕을 먹잖아요.

꼭 피를 보고 요란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선교를 해야 하는 건가요?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한 발 물러서는게 순리입니다.

선교자나 선교를 받는 자나 옆에서 지켜보는 자나 모두가 기뻐할 때 당신네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 같아요.

최소한 그리하도록 노력하는 교인을 보고 싶어 할 겁니다.

굳이 요란을 떨지 않아도 가능한 일을 억지로 문제를 일으키면서 하려는 까닭은 뭡니까?

 

 

댓글
2010.07.28 00:50:42
[레벨:1]땡알
추천 0 / 0 비추   

알맹이가 없다는 말에 확 공감이 가네요.

 

선교실적주의라고나 할까?

 

무조건 맹신하면 해결된다는 식이라서 거부감이 듭니다.

 

일부의 예이겠지만 공중도덕이나 사회규범을 무시하면서

 

웃으며 다가와 선교하는 분들을 보면 분노를 느낍니다.

 

특히 저에겐 특정 종교가 있다고 하여도

 

무시하며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 하는 태도는 저를 능멸하는 것 같아 분노를 느끼게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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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mas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