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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Ecology)와 경제(Economics) 그리고 윤리(Ethics)가 하나가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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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6. 15:41 카테고리 없음
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41 Ethics

매주 화요일마다 경향신문 교육면에 연재되는 '대입논술 가이드'를 꼭 챙겨 읽는다. 이번주 내용은 최근 교육부에서 시행하려다 만“부조리 행위 신고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에 대한 글이었다. ([대입논술 가이드]법으로 양심까지 통제할 것인가)

 
헉.. 방금 매우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이버에서 촌지에 관련한 이미지나 찾아볼려고 검색어를 입력했는데 가장 먼저 뜬 스폰서링크가' 전문신고포상요원'을 양성하는 학원 같은 곳이었다.


궁금해서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야에서 포상금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 원산지, 신문고시, 선거법위반, 보험범죄 신고, 불법의료행위, 일회용품,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불법쓰레기소각, 유사석유, 위조상품, 청소년유해환경 등에 적용되고 있었다. (일회용품도 하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하나하나 보면 분명 일선 공무원이 모자르기에 적용되는 분야이며 신고를 하면 확실히 공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학원까지 생겨가며 '포상금파파라치'를 양성(?)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경우엔 공급이 수요를 '억지로' 창출한 게 아닐까?? 하긴 전에 뉴스를 보니깐 일부러 이런 일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도 있으니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어쨌든 원래 주제로 돌아오자. 촌지를 포함한 뇌물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나 보다. 고대 이집트 시절 부터 있었다니 아마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뒷돈을 써서 일을 수월하게 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나보다.

촌지와 뇌물은 도대체 뭐가 다를까?? 비슷한 점이야 앞에서도 말했듯이 뒷돈을 써서 일을 쉽게하는 데 목적을 같이한다. 뇌물이 큰 액수라면 촌지는 비교적 작은 액수라는 게 다른 점일까?? 뭐 인사조로 건내주고 받는 돈을 흔히 '떡값'이라고들 하는데, 이 말이 지금은 뇌물과 동급으로 변해버렸다. 어떤 글을 읽어보니 왜 삼성에서 검사들에게 뿌리는 돈을 떡값이라고 하냐며 비난했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그 돈을 떡값이라고 해버리니 원래 좋은 말을 지저분한 말로 바꿔 버린 것이다. 공자님께서 말을 바로 하라고 한게 괜히 한 말이 아니다.

촌지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작은 마음의 선물'이었던 촌지가 지금은 뇌물하고 동급이 되어버렸다. 이러다 나중에는 축의금이나 상조금 같은 말도 변해버릴지 모르겠다. 하긴 상도를 보면 뇌물 같은 상조금으로 이권을 챙긴 상인도 있긴 있다. 교육계에서 촌지가 문제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교육열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아이보다 뛰어나야 한다!', '다른 아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등등 이런 생각으로 똘똘 뭉친 우리의 학부모가 일을 크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부 몰상식한 선생들이 나서서 돈을 받아 정당한 행위같은 차별대우를 한 게 문제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께 배우는 게 단지 지식뿐이라면 단지 수업료만 내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게 단지 지식뿐일까??  친구들과 어울리고 인성을 갈고 닦으며 모범이 되는 어른의 행동을 통해 알게 모르게 배우는 게 있어야 학교 교육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 학교라면 학원과 다를 게 없으니깐 말이다. 난 개인적으로 교육에서 적절한 성의 표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이를 제대로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 그런데 현재 같은 상황이라면 내가 학부모라도 기꺼이 성의표시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 배운다음에 하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고, 그렇다고 아예 안 주자니 내 아이만 손해보는 느낌이고.. 또 줘버려도 맘이 편하지 않을테고..

posted by namasca
2010. 12. 6. 15:39 Miscellany

오늘 경향신문에서 한 칼럼을 읽었습니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지난 한 달 동안 세계에서 일어난 주요한 세가지 사건.. 이란 대선 불복시위, 온두라스 쿠데타, 그리고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유혈참사를 되돌아 보면서 과연 자유와 평등 인권이 진정으로 신장되었는지 묻고 있는 칼럼입니다.


위에 나온 세 사건은 분명 역사의 후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뭐 멀리 볼 것도 없이 현재 이명박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 사태만 봐도 역사는 뒷걸음질 치는 것 같습니다. 훈훈했던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용산 참사 주인공들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 국정원, 국세청은 똘똘 뭉쳐 현 정권을 보위하는데 진심전력을 다하고 있고,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져 가고 있습니다. 어제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 소득 10분위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소득격차가 10.67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올해 1/4분기 동안 10분위(최상위층)의 소득은 3.4% 늘어난 데 반해 1분위(최하위층)의 소득은 9.7% 감소한 결과입니다. 더 우울한 결과는 가처분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10.67배에서 11.12배로 벌어져 세제를 통한 부의 재분배는 커녕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상·하위 10% 소득격차 사상최대)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는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역사는 진보한다고 생각합니다. 올 초 한겨레 아카데미를 다녔을 때 가장 처음 쓴 논술 주제가 바로 '역사는 진보하는가'였습니다. 그 주제에 대해 저는 자유와 평등이 확대되고 인권이 점점 더 존중받기 때문에 역사는 진보한다고 논했습니다. 그런데 논거를 살펴보니 조금 빈약하더라구요.. 논거로 제시한 게 시계나 냉장고 또는 수학공식 과학지식 같은 물건이나 지식의 확대를 자유의 신장으로 보고 이것들이 널리 퍼지는 것이 평등의 확대라고 해석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확대를 자유의 확대 민주주의의 확산을 평등의 확산으로 보고 현재 자본주의의 민주주의가 전 세계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확산됐다고 논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자본주의의 확산은 자본의 무차별적인 확대에 지나지 않았고 민주주의의 확산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 의사민주주의(pseudo democracy)의 확대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김수행교수님은 '자본주의의 경제의 위기와 공황'에서 물질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은 무한정 확대됨으로써 자본주의 기반 자체가 흔들려 불황이 지속된다고 하셨습니다.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18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이 명제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생존을 거듭하고 있다는 걸 보면 자본주의라는 괴물은 엄청난 적응력과 생존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로 변질되고 있고 (이에 대해 자카리아는 오히려 책임성을 방기한 엘리트의 부상을 염려합니다. '자유의 미래' 참조) 개도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독재정권이 많습니다. 여전히 민주화의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역사의 진보를 외치는 이유는 세상은 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세대의 경험과 지식이 나중 세대에 전달되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뒷걸음질 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오래되지 않아 곧바로 교정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와 엘리트주의 독재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도 이런 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적으로 유토피아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우리는 예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치독일의 전체주의, 소련의 중앙집권, 북한의 주체주의 등등.. 일방통행식의 유토피아 건설은 언제나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고 결과는 파국으로 나타났습니다.(북한의 경우는 파국으로 가고 있다고 표현해야겠네요)

역시 중요한 것은 일방통행이 아닌 소통과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도 책상 앞에서 책만 읽지 말고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소토을 해야 할 것 같아 이 블로그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의 제목은 'Ecology + Economy + Ethics → Evolve Earth' 입니다. 뭐 거창한 뜻은 아니고 생태학과 경제학 그리고 윤리학이 만나면 지구에 큰 변화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정했습니다. 유진 오덤이라는 위대한 생태학자의 생태학 교과서 가장 뒷부분을 보면 살아가는 곳에 대한 연구인 생태학과, 사는 곳에 대한 관리인 경제학이 통합되고, 윤리학이 연장되어 인간의 가치와 환경의 가치를 동시에 고려할 수 있을 때,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3E인 생태학(ECOLOGY), 경제학(ECONOMY), 윤리학(ETHICS)을 하나로 묶는 것은 궁극적인 총체주의이며, 우리의 미래를 위한 위대한 도전이 된다고 합니다. 비록 배운 것도 짧고 생각도 깊지 않지만 저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생태학이나 경제학 또는 윤리학은 거창한게 아닙니다. 생태학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동네 주변의 하천이나 뒷산 이야기이고, 경제학에서는 주번 사람들 살림살이 정도에 국한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윤리학도 뭐 마땅이 무엇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정도로 얘기 해보려고 합니다.  

 전부터 계속 해보자해보자 마음만 먹었지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시작했습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 좋은 분들과 진솔한 얘기를 많이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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